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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0 미국 공립교환 학생 참가자 |
작성자 : 김범일, 조회수 : 2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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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후기
Arkansas에 다녀온 김 범일
이번에 미국을 다녀오게 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내가 혼자가 되면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만약 한국이 아닌 환경에서 살아가면 나 자신의 삶의 패턴이 어떻게 바뀔 지를. 그리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를 어떻게 바꿀 지를.
처음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기로 마음 먹은게 작년 5월로 알고 있습니다. 2월에 어머니께서 결정을 내리시고 계속 저를 끌고 다시셨다가, 저 자신도 역시 한국에서 공부하다가는 왠지 실패만 할 것 같다는 생각에, 기회의 땅, 미국으로 가자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정현정 실장님께서 주도하시며, 겨울, 봄, 여름을 거쳐 많은 시험을 보고, 많은 교육을 거쳐서 결국에는 교환학생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방학을 하고, 오리엔테이션까지 하는 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실감이 안 났습니다. 막연히 미국 간다고만 생각하였지, 제 마음은 사람들과 떨어진다는 생각을 안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기 2일전인 8월 26일에 짐 쌀때 비로소 실감이 나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슬퍼 할 세 없이, 출국날짜 8월 28일은 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래도 마음을 다 잡았는지 그제야 모두의 곁에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교환학생 생활을 시작하고, 2번에 거친 환승과, 3번에 거친 비행기 탑승, 그리고 4번에 거친 공항에서의 움직임, 그 때의 피로함은 정말 말로 표현하려고하면 또 피곤해 질 정도로 정말 피곤한 하루였습니다(돌아올 때 또한 피곤하였지만…). 하지만, 목적지인 리틀락 공항에 도착하자 예상과는 달리 단 두사람이 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름아닌 코디네이터와 다른 한국인. 그 때는 몰랐지만, 그곳에 살면서 알아낸것이, 단 한명의 한국인이 미국에서 또 다른 삶의 낙을 주는구나를 세삼 깨달았습니다.
공항에서도 들어오고, 호스트 패밀리도 만나고, 학교를 갔습니다. 일단 생판 모르는 건물 아래 모르는 아이들과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반 배정을 받고 8교시 동안의 학교 탐색을 했습니다. 그 결과, 학교는 굉장히 시설도 좋고, 공기도 맑고(?), 무엇보다 정 많은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 생활도 참 좋았습니다.
학교에 갔다오면 돌아오는 집. 집에는 단 두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호스트마더였던 Lavonia는 가끔은 어머니처럼 잔소리가 많지만, 그래도 언제나 다정하고 정이 넘쳐흐르시는 분이었고, 아버지 Bill께서는 연륜도 많으시고, 여행하기 좋아하시며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기 좋아하시는 전형적인 할아버지지만, 그 만의 장점이 많은 host dad였다. 처음에는 꽤나 연륜이 있으시고, 거기다가 시골 쪽에서 살아야 된다고 들었기에, 경험에 앞서 걱정부터 굉장히 많이 했지만, 늘 어딘가 아프면 병원도 데려가 주시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굳이 당장 안가도되는 장을 보러 같이 가주시고, 심지어 떠날때도 세관뚫고 비행기 앞까지 같이 가도 되는 줄 아시다가 그러지 못하여서 같이 슬퍼도 하셨던 분들이었기에, 나의 교환학생 생활은 별 탈없이 잘 끝났고, 또 해어지는 순간에 나의 울음을 터뜨려 주셨다.
주로 미국인들은 수요일 저녁, 일요일 아침, 일요일 저녁에 교회를 간다. 교회에는 많은 어르신들과 어른들, 그리고 많은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또 다른 커뮤니티이다. 교회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시다. 일단 교회는 성경에서 말하는 데로, 모두에게 평등하기 때문에, 인종에 대한 신경도 별로 쓰지 않는다. 그리고 교회 사람들 하나하나가 우리를 챙겨주시고, 대화를 해 주시고, 언제나 웃으며 인사를 하시며, 우리와 관련된 문제는 같이 심사숙고하여주셨기 때문에 교회 또한 기억에 남는 커뮤니티로 뽑는다. 뭐니뭐니해도 교환학생 Goodbye-party를 교회 소유의 주로 파티장이라고 불리우는 fellowship building에서 열었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언제나, 뭔가 친구들과 나가 놀고싶은데, 그렇다고 농구를 하거나 신체적 활동을 하고 싶지는 않을 때, 친구들과 나는 동네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었다. 꽤나 크…진 않지만 적당한 규모의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음식점이 꽤 많은 편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겄이 Sonic이라는 음식점이었다. 다른 McDonald’s나 Burger King처럼 가게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테이크아웃이 아닌, 차를 끌고 매장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버튼을 누르고 음식을 주문하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차에서 먹거나 그대로 집에 가면 되는 시스템이 획기적이었다. 물론 Drive Thru도 있었지만, Drive In이 뭔가 색달랐기 때문에 출출하면 주로 그 곳에 차를 끌고 친구들과 갔었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Subway다. Subway는 한국에서도 꽤 널리 퍼져있지만, 미국은 왠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한 가지 메뉴만 먹었지만, 미국은 수프도 있고, 피자도 만들어 주기 때문에, 고르는 재미가 있다. 또한 피자는 토핑을 내 맘대로 올리기 때문에 재밌는 듯 하였다. 그리고 내가 Subway를 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곳 또한 커뮤니티의 장소이기 때문에다. Subway를 매주 수요일 저녁, 교회가 끝난 후 가다보니, 사장님도 날 알아보고, 그리고 그 때마다 Subway를 찾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끼리 또 친해지기 때문에, 나 또한 그 그룹에 저절로 끼어들기 시작하고, 언제나 오고 가는 말 속에 샌드위치를 먹어서 매 주 수요일저녁이 즐거웠다.
하지만, 이젠 그런 생활도 안녕, 다시 슬픈 한국의 생활로 돌아와야 했다. 교환학생 생활 초반에는 언제나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변화에 대한 떨림으로 가득하여,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전에 미국 가기 싫다고 때를 쓰던 내가 하기엔 좀 뭐한 말이지만, 난 한국보다 미국이 훨씬 낫다는 의견이다. 한국 사람들은 10개월동안의 경험을 하면 다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10개월을 보내고 나면, 그 때 만났던 사람들은 이제 보기가 힘들것이다. 내가 그곳을 방문하지 않는 이상은, 또 다시 나의 기억에서 잊혀질 것이다. 그렇기에,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정을 했으면, 해어짐에 대한 서글픔은 잊어도 좋다. 왜냐하면, 후에 미국에서 해어짐을 겪을 때,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서글픔이 10개월동안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서글픔보다는 훨씬 크고, 그것을 나는 잘 아니깐. 그리고 미국이 한국보다 가장 낫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사교육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을 하고 싶어도, 그럴 시간이 없다. 이번에 SAT 책을 잔뜩 가져갔는데, 학교 숙제하기도 바뻐 그걸 공부할 시간에 학교 과제를 더 많이 했다. 더군다나 저녁 10시면 소등을 해야되기 때문에 그 시간엔 컴퓨터로 과제를 작성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사교육을 할 시간도 없어서 한국보다는 좀 더 느긋한 생활을 할 수있을 것이다. 적어도 학원 숙제는 없으니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미국은 말 그대로 기회였다. 한국의 경쟁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서로를 도와가며 공부하는 미국의 ABC위주의 교육. 그렇기에 더욱 정이 넘치고 언제나 웃음꽃이 피는 학교생활. 돈 하나 받지 않지만,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시고 언제나 24시간 지켜주시며, 가끔은 잔소리도 하시는 우리 호스트 패밀리. 늘 걱정을 들어주고 시원한 답변을 해주는 교회 목사님과 모든 교회가족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 우리 정현정 실장님. 이런 구성원들이 나의 교환학생 생활을 엮어주고, 결국 이렇게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늘 나를 도와주셨던 Arkansas생활의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한국에서도 열심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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